동래구 국민체육센터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나섰다. 센터에 도착하니 키오스크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보였다. 왜 대기하는 건지 직원분께 물었다. 그랬더니 5시 38분부터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다들 아는 눈치인데 나만 몰랐던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이달 처음 등록한 수강생이다.

모든 것이 초보라서 물어봐야 할 것들이 많은데 벌써 이달의 절반이 훌쩍 지나버렸다. 강습 받는 날이 아흐레 정도 남았다. 어제는 센터로부터 재등록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 다음 달에는 부산을 벗어나야 할 일이 많아서 성실하게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강습비가 저렴하니 신청해두고 며칠 못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보다 더 성실하게 다닐 수 있는 분들께 한자리라도 더 기회가 생기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재등록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러다 유아용 풀을 못 벗어난 채 강습이 끝나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배우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야겠다. 내년에 또 강습을 받을 기회가 올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일찍 도착해서 준비 운동을 시작하기까지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몸을 풀고 성인용 풀장에 들어가 지금까지 연습한 동작들을 해봤다. 물속에서 천천히 숨 내쉬어보고 팔과 다리를 쭉 뻗어서 물 위에 뜨기도 해봤다.

배운 대로 발차기를 했는데 유아용 풀에서 하는 것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 동작에 이어서 팔을 저어보니 자세가 엉성해진다. 또 팔을 저을 때 호흡하는 요령을 몰라서 허우적대다가 그만뒀다.

이렇게만 보니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많이 알게 된 것 같으면서도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만큼 이 과정을 겪어야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일찍 준비된 탓에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시간이 좀처럼 흐른 것 같지가 않았다. 아직 시간이 남았을 때, 마지막으로 물 위에 누웠다. 물에 드러누우면 가라앉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잘 뜬다. 센터에 오기 전부터 알고 있던 자세다. 어린 시절에 물놀이를 할 때 누군가로부터 배웠다.

상체를 젖히고 허리를 편 상태로 물에 눕히면 물에 뜬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좀처럼 물에 뜨지 못했다. 물에 못 뜰까 봐 겁에 질려서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바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런 상황이 거듭되니 더 이상 그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겠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못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변함없이 “계속해봐라. 결국 뜰 거다”라고 말해주었다.

옆에서 자세를 잡아주기도 했고 몇 번의 시도 끝에 물에 뜰 수 있게 되었다. 무수히 실패를 거듭한 한 탓에 어떠한 성취도 기대하지 않게 된 지점이 있었다. 그때 편안한 마음을 얻었다. 불안이 사라진 마음이 조요(照耀)해졌다. 이윽고 몸이 중력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물에 떴다.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

성취를 향한 욕망을 비워낼 때 불안도 함께 비워진 듯했다. 그렇게 마음속이 텅 빈 공간이 되었을 때 더 이상 몸을 움츠리지 않게 됐다. 모종의 부력 장치가 내 안에 만들어진 듯했다.

낮아지기, 정신적 중력에서 그것은 올라가기이다. 정신적 중력은 우리를 높은 쪽으로 떨어뜨린다.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윤진 옮김, 2021. 11, 문학과지성사, 11쪽.

드러눕는 자세를 취하자 그때가 생각났다. 이제는 몸이 기억해서 마음 상태가 어떤지에 상관 없이 물에 잘 뜬다. 잘 헤엄치지 못해도 물에 뜨는 건 자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에 뜬 채로 천천히 호흡했다. 허우적댈 때 떠올랐던 분주한 마음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동안 내 시선은 천장을 응시했다. 오늘의 하늘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서 지붕이 열린 센터의 모습을 상상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