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구 국민체육센터

눈을 떴다. 새벽 3시 45분이었다. 그대로 깨어 있었다. 혹여나 다시 잠든 채로 못 일어날까 봐 그랬다. 어제처럼 결석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오전에 할 일을 미리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움직이다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센터에 갈 시간이 되어서 준비물을 챙겨 집을 나섰다.

쌀쌀해진 날씨에 적응을 했는지 오늘은 별로 춥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런데 샤워를 하고 수영장에 입장하자마자 차가운 공기를 느꼈다. 풀장 가까이 가서 몸을 적신 다음 물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물은 미지근한데 조금 차가운 편이다. 그래도 바깥공기보다는 따뜻했다.

준비운동을 마치고 다시 유아용 풀장으로 들어갔다. 성인용 풀장보다 훨씬 따뜻했다. 연습하다가 유아용 풀장 바닥 어딘가를 발로 발로 밟았는데 발밑에서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따뜻했다. 온수가 나오는 곳인 것 같았다. 나름 온수 풀이다.

어제 하루 결석했지만 다행히 진도가 나가지는 않았다. 지난주 금요일에 했던 연습을 반복했다. 어깨를 으쓱한 상태에서 팔을 십일자로 쭉 폈다. 그 상태에서 어깨를 돌려 팔을 집어던지듯이 저었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팔 힘으로 물을 밀어내려고 했는데 오늘은 더 자세히 설명을 듣고 제대로 된 요령을 터득하게 된 것 같다.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연습하면서 조금씩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새벽에 깨어 있었던 시간이 꽤 긴 편이다. 그래도 피곤하지는 않다. 새벽 시간에 활동하는 일에 적응한 것이다. 이렇게 습관이 들기까지 시간과 돈이 들었다. 열흘이 걸렸고 칠만 원가량의 수강료가 지불됐다. 날마다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시간을 들였고 투자한 재화를 잃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습관이 형성되는 것 같다. 물론 이 외에도 방법이 많았겠지만 내 경우는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강박적으로 습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좋은 습관이더라도 어제처럼 하루 못 갔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오히려 마음에 독을 타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대신 내가 조금씩의 시간과 재화 투자를 통해서 습관을 만들려는지에 관한 최종적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잘 헤엄치고 싶은 것이 주된 이유인 점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보니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것은 내가 생각보다 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센터에 다니기 전에는 씻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아내가 “씻고 들어가”라고 말해야 샤워를 하는 편이었다. 그때는 내가 물을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수영장에 입장할 때 한 번, 퇴장할 때 한 번, 어디 나갔다 들어오면 한 번… 하루에 세 번 정도 샤워를 하게 된다. 번거로운 일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또 헤엄치고나면 점심쯤에 잠깐 피곤함을 느끼긴 하지만 대부분의 하루 일과 동안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서 좋다.

실제로 수영장에 다녀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물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주어진 시간을 의무감으로 보낼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빼먹고 싶지 않아서 새벽에 부지런히 일어나 자연스럽게 센터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깊고 푸른 바다를 꿈꾸기 시작했다. 멀고 먼 바다와 거친 해안선을 목표 삼아 모험을 해보고 싶었다. 촛불에 이끌리는 불나비처럼 나는 결국 파도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바다와 강, 그리고 시냇물이 얼마나 큰 생기를 불어넣는지도 느껴 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샘물이 솟아나지 않는 들판이 얼마나 삭막한지를 생각해보기만해도 쉽게 알 수 있다.

-허먼 멜빌, 『모비 딕』, 하소연 옮김, 자화상, 10쪽.

수영 강습을 받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다.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땅에서 보낸다. 땅 위에서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무수한 삭막함을 목격한다. 주변을 에워싼 콘크리트 건물들이 그렇다. 곧 들이닥칠 미세먼지가 한몫할 것이다. 강과 숲의 파괴로 점점 사막화 되어가는 지구가 그렇다.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는 흙먼지가 휘날린다.

이런 삭막함 속에서 물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땅 위에서 적당히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배를 타려 했던 허먼 멜빌의 심정이 이해되는 요즘이다. 내 곁에는 수영장이라도 있지만 그때는 수온 조절 장치가 없는 강이나 바다로 뛰어들어야 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습관이 형성되는 데는 의지와 재화 외에도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 같다. 습성이다. 천부적인 면도 있겠지만 후천적으로 알게 된 습성의 비중이 더 크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이 좋고 좋지 않은가를 스스로가 깊이 알게 된다. 예전에는 다 좋을 것 같다고 받아들이던 것들이 실제로는 삭막하게 하는 무언가라는 깨달음이 왔을 때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퍽퍽한 것만 먹다 보면 목이 막힌다. 그럴때 대개의 경우 물을 마신다. 마찬가지로 삭막한 현실만을 쉼 없이 받아들이기에 한계를 느꼈던 지점이 있었다. 마침 좋은 기회로 풀장에 몸을 담그게 되었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촉촉한 삶을 누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요즘 물을 자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