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구 국민체육센터

오늘은 출석하지 못했다. 일어나 보니 퇴실 시간이다. 알람은 꺼져 있었다. 괜히 아내를 깨웠다. “혹시 알람 껐어?” 본인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 내가 끈 게 분명하다. 그런데 끈 기억이 나지 않아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세수를 하고 책상에 앉았다.

그렇게 다니기 힘들어했던 회사도 늦잠 자서 못 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토록 간절히 다니고 싶어 했던 수영 강습을 하루라도 놓쳤다는 생각에 머리카락을 꽉 쥐었다. 강사님이 한 번에 가르칠 내용을 나 때문에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한 마음이 솟구쳤다. 내일은 반드시 출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입수하지 않은 오늘의 정신은 다소 흐리멍덩하고 찝찝하다. 찬물에 정신을 깨우지 못한 점도 한몫하겠지만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으로부터 오는 죄책감이 커서 그렇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예전처럼 마음에 늪을 만들고 싶지 않다. 늪에서는 헤엄치기는커녕 몸도 가누지 못한다.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을 때,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 적이 많았다. 질책을 들으면 핑계대기 바빴다. ‘아파서 그랬어요’, ‘일이 많아서 그랬어요’이런 사유들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솔직하지 못했다. 위기로부터 빠져나왔지만 그 이후에 자유로웠던가? 생각해 봤다.

수영장 물은 염소소독제가 희석된 맑은 물이다. 여기에 수영복이라는 다소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입수를 한다. 얇은 옷을 입는 이유는 옷을 껴입으면 껴입을수록 물의 저항을 심하게 받아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잘 헤엄치기 위해서 얇은 수영복을 입는다. 수치를 가린답시고 두꺼운 옷을 껴입는 것은 물속을 스스로 늪으로 만드는 꼴이다.

옷을 입으면 몸은 가려질 뿐이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핑계로 사실을 덮지만 진실은 마음 한편에 고이 남아 있다. 이럴 때 가끔은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핑계를 대기 훨씬 전의 상태로. 벌거벗고 다녀도 부끄러움을 몰랐던 시절로.

짐을 무던히도 지는 정신은 이처럼 더없이 무거운 짐 모두를 짊어진다. 그러고는 마치 짐을 가득 지고 사막을 향해 서둘러 달리는 낙타처럼 그 자신의 사막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그러나 외롭게 짝이 없는 저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정신이 사자로 변하는 것이다. 정신이 자유를 쟁취하여 그 자신의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해보라, 형제들이여. 사자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아이는 해낼 수 있는 것이지? 왜 강탈을 일삼는 사자는 이제 아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책세상, 39~40쪽.

니체는 인간 정신의 변화가 낙타, 사자, 아이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봤는데 그중 정점에 아이를 두었다.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이 광활한 세계를 표류하다 보니 아이만큼 헤엄치는 일에 능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벌거벗는다는 사실조차 모를 때. 그때가 가장 좋은 상태인 것이다.

내일은 반드시 일어나서 수영을 가야겠다. 알람을 새벽 5시부터 5분 단위로 맞췄다. 수강생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법칙 같은 것에 얽매여서 약속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서 지키고 싶은 일이다. 수영을 순진무구하게 즐기려면 자유롭게 헤엄쳐야 하고 자유롭게 헤엄치려면 배워야 할 게 많다. 오늘은 주춤했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이 또한 헤엄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