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구 국민체육센터

이웃들을 만나면 수영을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전부터 다니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진짜 다니게 되었다고 하니 놀라는 사람도 있다. 옆집 아저씨는 늘 대기만 하다가 이제는 신청하기를 관뒀다고 말했다. 그분께 포기하지 말고 매번 신청 버튼을 눌러 보라고 했다. “포기하지 않으니까 저도 어느 순간 수영장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 말을 남기며.

그건 그렇고,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을과 겨울에 다니는 새벽 수영은 덥거나 따뜻한 계절에 비해 신청 경쟁률이 낮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이번에 당첨될 수 있는 확률이 비교적 낮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새벽 공기가 차다. 바깥으로 몸을 던지기가 점점 두려워지고 있다. 추위 때문에 한껏 경직된 상태인데 그렇다고 온탕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데, 이웃 중에 어떤 분은 새벽 수영 분위기가 어떻냐고 묻기도 했었다. 그분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것을 봤지만, 환상을 심어주기 싫어서 솔직하게 말했다.

“숙취가 가득한 어느 날 새벽에 바라본 태릉선수촌.” (술을 마신 뒤에는 절대로 입수하면 안 된다.)

싱가포르 센토사섬 리조트의 야외 수영장에서 한가롭게 배드에 누워있다가 심심하면 풀장에 들어가 몸을 적시는… 그런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준비 운동이 끝나면 말없이 헤엄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 모습이 가끔 숙연하게 느껴진다. 물론, 저마다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니 이런 생각은 참고만 할 것을 부탁드린다. 영화평만 읽고서 영화를 다 봤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오늘도 딱딱한 몸뚱어리를 풀장으로 던졌고 잠을 깨우는데 성공했다. 누구보다 선명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새벽 수영의 장점이다. 오늘도 유아용 풀에 들어가 벽을 잡고 기본적인 동작을 연습한 뒤에 벽에서 벽까지 헤엄치는 연습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제보다 못했다.

고개에 힘을 주는 바람에 바른 자세를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목은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편안하게 두고 팔과 다리를 쭉 늘어뜨려야 하는데 그게 안 됐다. 앞으로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었던 것이 문제였다.

확실히 그랬다. 연습할 때마다 방향이 오른쪽으로 틀어졌다. 그때 맞은편의 벽을 더 잘 보려고 앞을 보기 위해 목에 힘을 줬더니 팔과 다리가 굽혀지고 어깨가 좌우로 움직이게 되었다. 이내 허우적대다가 가라앉았다. 연습 도중에 강사님이 목에는 힘을 빼야 한다고 한 번 더 말해주셨는데 잘 지켜지지 않았다. 물에 뜨는 것보다도 잘 가고 있는지가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살다 보면 계획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분명 직선 코스를 계획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중간의 여러 변수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여기저기서 헤엄치느라 발생한 파동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해서 그랬던 것일까? 물론 그런 이유도 조금은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파동은 나도 만들었다. 열심히 살려고 모두가 헤엄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남 탓만 할 수는 없었다.

사소한 변수들을 제외하고 가장 큰 원인을 생각했을 때, 제대로 헤엄치는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것은 내 안의 불안이었다. 불안은 곧게 나아가려는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고개를 들어서 미래에 어디에 닿을 것인가를 걱정하게 만든다. ‘끝 지점으로 제대로 가고 있나?’ 그런 마음 때문에 수없이 자세를 흩트리고 가라앉고 자신감을 잃기를 반복해왔다.

혹여나 실수해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면 “죄송합니다” 사과하면 될 일인데 그것이 싫었던 것이다. 애초에 불안이 아니었다면 그다지 사과할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잘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생각하다가 잘 하려고 발버둥 쳤고, 무리한 나머지 오히려 일을 그르친 일이 많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남겼다. 결과적으로 끝장난 일이 많았다.

예전처럼 가라앉지 않으려면 지금 제대로 헤엄쳐야만 한다. 무엇 때문에 미래의 내 위치를 걱정했으며, 또 혹여나 안 좋은 과거가 되어버릴 미래를 섣불리 걱정했을까? 세상만사 사필귀정일 것이 뻔한데. 연습 중에 발차기를 하지 않고 떠있기만 해봤다. 그래도 절반 정도는 앞으로 나아갔다.

불안은 과거에 갇히고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온다. 그런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고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런 과거나 미래를 현재의 상황에서 파악하려고 하기 때문에 헤엄치기 두려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과거를 ‘기억’, 현재를 ‘직관’, 미래를 ‘기대’라는 단어로 대치했을 때, 오늘의 내 모습을 보다 선명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목적지에 제대로 닿는 모습을 ‘기대’하는데 실제로 그렇지 못해서 나만의 ‘흑역사(기억)’를 만들면 어떡하지 하고서 걱정하는 순간(직관)의 내가 있었다.

우리의 마음은 ‘기대’하고, ‘직관’하고 ‘기억’한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선한용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413쪽.

시간이 흐르는 동안 헤엄치다 보면 필연적으로 기억하는 일과 직관하는 일과 기대하는 일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데 헤엄치는 동안 그것들이 머릿속에서 분산되어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앞으로는 마냥 흐트러진 채로만 남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제대로 헤엄치고 싶다는 단 하나의 지향성이 마음속에서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그것만이 성실히 연습에 임하는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끝내 분산된 정신을 한 가닥으로 모을 것이다. 벽에 닿는 것이 목적이 아닌 만큼 내일은 더 바른 자세에 신경을 쓰며, 또 성실히 헤엄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