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구 국민체육센터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워드를 켰다. 수영복을 빨고 물 한 잔 떠서 왔는데 벌써 기진맥진이다. 오늘은 자유형 발차기를 했다. 힘들었다. 체력이 이렇게 저질이었나 싶다. 다른 수강생분들은 잘 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자세히는 못 봤고 소리만 듣고서 생각함) 나는 하다 쉬고 하다 쉬고를 반복했다.

물론, 하다가 도중에 멈출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너무 많이 쉰 것 같다. 발길질 몇 번 하다가 숨쉬기 바빴다. 물속에 가슴팍을 담그면 숨이 잘 안 쉬어져서 반쯤 일어나서 숨을 쉬기도 했다. 그때, 저 멀리 성인용 풀에서 수영하고 있는 분들이 보였다. 신기했다. 어떻게 풀장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지?

내가 만약 저기에 들어간다면 도중에 여러 번 가라앉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분들 중에는 분명 유아용 풀에서부터 시작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수영을 배워왔거나. 나도 계속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어른들은 한때 어린이들이었다.

-안토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어린 왕자』 서문에 실린 문구를 떠올렸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잘 연습하면 나도 언젠가는 유아용 풀장을 벗어나 깊은 곳에서 헤엄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서 연습했다. 그런데 오늘 연습은 정말 쉽지 않았다. 강사님께서 무릎을 굽히지 말고 다리를 펴서 허벅지의 힘으로 물을 밀어내야 한다고 하셨다. 시범도 보여주셨다. 그런데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았다.

허벅지 힘으로…라고 하셨는데 무릎을 굽히지 않은 상태로 하려고 하니까 다리 전체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한쪽 다리와 다른 쪽 다리가 오르내리는 리듬이 일정하게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강사님의 시범과 내 연습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느꼈다. 수영하는 분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조금 더 연습해 보려 했는데 시간이 다 갔다. 힘들어서 물 밖으로 나와 헉헉거리다가 다 보낸 시간이었다. 첫 술에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력을 쌓으려면 꾸준히 연습할 필요가 있겠다. 힘들다고 발차기를 그만두면 헤엄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다른 영법도 있겠지만 자유형의 경우는 발을 차야 물에 뜨면서 나아갈 수 있나 보다.

언뜻 보니,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 전반의 모습과 자유형 발차기가 많이 닮은 것 같아 보였다. 두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절이었다. 방향은 몰랐으나 고군분투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안 그러면 나아가지 못하고 가라앉게 되니까. 대안이 보이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성취감을 느끼는 삶도 아니었다. 괴로움이 반복되고 지속적으로 소진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맨 처음 고점을 찍고 시작했던 열정 그래프는 시간에 대해 반비례 곡선을 그려나갔다.

지금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방향과 목적, 기초부터 제대로 잡는 시간을 가지는 중이다. 이제야 비로소 허둥거리던 늪에서 빠져나와 제대로 헤엄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생겼다는 확신이 든다.

센터를 나서면서 조금 신기한 기분에 휩싸인 채로 귀가했다. 매번 신청했지만 떨어져서 수영 배우기를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이유 없이 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마침 수영 신청 마감 전날이었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서 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입금하라는 문자가 왔다. 그때 자고 있던 아내를 깨우며 기뻐했는데 기대할 때는 안 되다가 전혀 뜻하지 않은 시점에서 수강 신청이 되었기에 기쁨이 배가되었다. 9월 말부터는 미남역 인근의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센터를 바라보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나, 다음 달에 저기서 수영할 수 있다!”

그걸 너무 자주 들어서 질렸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도 아니고 복권에 당첨된 것도 아닌데. 무엇이 그리도 기쁜 마음에 휩싸이게 하는 걸까? 그저 한 줌의 일상일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