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구 국민체육센터

이튿날이 밝았다. 그다지 밝지는 않다. 조금 어둡다. 서서히 해가 짧아지는 것이다. 기온도 많이 내렸다. 지난여름이 꿈처럼 느껴진다. 어젯밤에는 전기장판을 틀었다. 찬 공기를 뚫고 말려둔 수영복을 걷으러 밖으로 나가려했다. 그런데 현관 앞에 다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아내가 그렇게 해두었나보다.

어제 첫 수영을 다녀온 내게 아내가 소감을 물었다. 물속에서 숨 내쉬는 방법을 배웠고 재미있었다고 했다. 물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천천히 숨을 내뱉는 연습을 했다고 했다. 그러자 “그게 뭐야? 대박이네”라고 했다.

“뭐가 대박이야?” 아직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대가리 박기’ 줄임말”이라고 했다.

오늘도 유아용 풀에서 물속에서 숨을 내쉬는 연습과 몸을 펴서 물에 뜨는 연습을 했다. 연습 중에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물속에서 입으로 숨 쉴 뻔했다. 다소 저렴한 표현을 들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한 마음으로 연습에 임했다.

물속에서 숨을 내뱉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런데 몸을 띄우는 게 잘 안됐다. 강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몸을 쭉 뻗었는데 계속 가라앉았다. 이상하다 생각했던 찰나에 숨을 참아보았다. 그러니 물에 떴다. 이때까지 숨을 계속 내쉬었기 때문에 가라앉았던 것이다. 강사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부분을 쏙 빼고 들었나 보다.

숨을 참고 팔과 다리를 양 끝으로 쭉 뻗으니 몸이 떴다. 뒤통수와 어깨, 엉덩이가 수면 위로 살짝 솟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서 팔과 다리에 힘을 주면 다시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머리를 최대한 물속에 집어넣고 귀 뒤쪽에 양 팔을 붙였다. 팔과 다리에 힘을 뺀 상태로 쭉 펴고 손끝과 발끝을 펴는 느낌으로 당겼다. 훨씬 잘 떴다. 강사님께서 내일부터는 발로 차는 연습을 할 거라고 하셨다. 시계를 보니 마칠 시간이었다.

유아용 풀에 담겨 있는 동안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 느껴진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은 것들이 몸에 부딪혔다. 어제만 해도 물속에서 들리는 백색소음 외에 다른 소리들은 잘 듣지 못했다. 그런데 벽면을 치고 메아리쳐 울리는 소리라던가 물속에서 숨을 내쉴 때 공기방울이 보글거리는 소리들이 오늘따라 잘 들렸다.

소리. 있었는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소리를 듣고 있자니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학업의 실패, 일의 실패, 인간관계의 실패. 실패 투성이었던 나날들. 실패하기 전에는 모든 일들이 순조롭다고 생각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마치 물속에서 내뱉는 공기방울 소리처럼 사라졌다. 가지고 있던 것을 천천히 뱉으며 바닥에 가까이 닿아가는 인생이었다. 부풀어 오른 꿈을 큰 소리로 외쳤던 적이 있었던가? 결국 벽에 이리저리 부딪히며 조금 울리다 멸망하는 메아리가 될 운명이었다.

오래 생각해 보고 싶어서 오늘은 어제보다 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숨을 거의 다 내쉬었을 때, 바닥과 아주 가까워졌을 때,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물에 뜬 채로 바닥까지 내려온 빛을 보기도 했고. 이 연습을 반복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