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구 국민체육센터

새벽 다섯 시 반. 경고음처럼 울리는 알람 소리.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나야 한다. 5분 정도 뒤척이다가 일어났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오랜만이다.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양치하고 면도만 하고서 집을 나섰다. 센터가 5분 정도 걸어 가면 닿는 거리에 있어서 간소하게 준비해서 나갔다. 조금 늦었다고 생각해서 달렸는데 1분 만에 도착했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오늘은 수영을 배우는 첫날이다. 로비에 들어가서 직원분으로부터 회원 카드를 건네받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먼저 내렸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길도 없는 방향으로 무작정 돌진했다. 사람들이 나랑 반대 방향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 길로 따라갔다. 탈의실에서 사물함을 찾은 뒤 옷을 벗어서 넣어 두고 샤워를 했다.

마침내 수영장에 입장했다. 이 순간이 오기를 오랫동안 기대했다.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포기하지 않고 신청 버튼을 눌렸다. 이제는 어엿한 회원이다. 비록 한 달간 다닐 수 있지만… 그래도 좋다. 수영장에 들어설 때 지난 시절이 생각나서 감격이 컸다. 이 감정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글로 남겨본다.

오늘 제일 많이 한 말은 “처음 왔는데요”다. 체육센터 로비에서도 그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모든 걸 다 물어봐야 했던 날이다. 강사님께도 “처음 왔는데요”라고 말씀드리니 친절히 안내해 주셨다.

어디서 수영을 배운 적이 없다고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살면서 계곡이나 바다 같은 곳에서 수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올여름에 계곡에 갔다가 빠져 죽을뻔한 적이 있어서 제대로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왕초보의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계곡에서 빠져 죽지 않을 정도로 수영을 잘 하게 되면 좋겠다.

아무튼, 왕초보의 마음으로 시작하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 운동을 마치고 수영을 시작한 사람끼리 유아용 풀에 들어갔다. 물속에서 숨 쉬는 연습부터 했다. 기초 중에 가장 기초인 것 같은데 쉽지가 않다.

귀가 잠길 정도로 얼굴을 물에 담갔다. 코로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강사님께서 ‘음~~~~’ 소리를 내면서 설명해 주시니 바로 이해가 됐다. (소리까지 따라 할 필요는 없고 그 리듬감을 잘 떠올리면서) 코로 천천히 숨을 내쉰 뒤에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빠르게 입으로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곧바로 물속으로 얼굴을 집어넣는다. 이 과정을 반복했다.

또 두 팔과 다리를 쫙 펴서 물 위에 둥둥 떠보기도 했다. 손끝과 발끝을 양 끝으로 당기는 느낌으로 팔과 다리를 곧게 폈다. 강사님은 뜨시던데 나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오늘은 비록 잘 해내지 못했지만 내일부터는 서서히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 들어갔던 유아용 풀이 상징적이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첫 수업을 마쳤다.

새벽에 다소 비몽사몽한 채로 물속에 들어갔는데 정신이 깨고 좋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어디선가 대문을 닫는 소리가 들린다. 출근할 시간이거나 학교 갈 시간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었다. 눈뜨자마자 일과가 시작되는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런데 수영장에 다녀오니까 하루를 시작하기 앞서 조용히 사색할 시간이 확보되어서 좋다. 수영 이후에 변화될 일상의 모습이 기대된다.

물속에 잠겨서 숨을 내쉬는 연습도 좋았다. 살면서 수영장 바닥을 볼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진득이 봤다. 숨을 천천히 내쉬는 동안 바닥을 본 것이다. 형광등 불빛이 물결의 움직임을 수영장 바닥으로 끄집어 당기니 일렁이는 그물 모양이 만들어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물 밖에서 사는 동안은 앞만 보고 달리느라 바닥을 볼 일도 없고 빛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물론, 이전까지의 삶은 그런 것들을 꼭 알아야 했나 싶었던 시절이었다. 물속에서는 특유의 백색소음 말고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바닥과 빛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락스 향이 피부로 스며드는 것 같기도 하고 이따금씩 떠다니는 좁쌀만 한 부유물(?)들이 내 몸에 닿는 것 같기도 했다. 물속에 담겨 있던 낯선 것들이 내게로 충돌했다. 예전에는 그런 것들이 내 몸을 더럽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몸 밖에서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들은 나를 더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샤워하면 그만이니까. 오히려 나를 더럽히는 것들은 내 몸 안에서 몸 밖으로 나오는 것─나쁜 마음, 나쁜 생각, 나쁜 말들이 아닐까? 그런 것들이 나를 더럽히는 동시에 수영장마저 더럽히지는 않을까? 샤워하면서 마음까지도 잘 씻어야 겠다.

좋은 마음으로 배우기 시작한 만큼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다.

몸과 마음이 빠져 죽지 않을 정도로. 잘 헤엄칠 수 있게 되기를.